노희경 -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Author : Rin / Date : 2006/04/19 00:18 / Category : 수다거리/script

지금 사랑하고 있지 않은자, 모두 유죄...
나도 한 때 자신에 대한 보호본능에 시달렸다.
사랑을 할 땐 더 더욱이 그랬다...

사랑을 하면서도 나 자신이 빠져나갈 틈을
여지없이 만들었던 것이다.
가령, 죽도록 사랑한다거나, 영원히 사랑한다거나,
미치도록 그립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내게 사랑은 쉽게 변할 수 있는 방부제를 넣지 않은 빵과 같았고,
계절처럼 반드시 퇴색하며, 늙은 노인의 하루처럼 지루했다.

책임질 수 없는 말은 하지 말자...가볍게 하자, 가볍게...
보고는 싶다고 말하면서 지금은 사랑한다고 말하고
변할 수도 있다고 끊임없이 상대와 내게 주입시키자...
그래서 헤어질 땐 울고불고 말고 깔끔하게 안녕...!

나는 그게 옳은 줄 알았다...
그것이 상처받지 않고 상처주지 않는 일이라고 진정 믿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드는 생각. 너 그리 살어 행복해?...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죽도록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 만큼만 사랑했고,
영원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나 쉽게 끝이 났다.
내가 미치도록 그리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나를 미치게 보고 싶어하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사랑은 내가 먼저 다 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주지 않는다.
버리지 않으면 채워지지 않는 물잔과 같았다.

내가 아는 한 여자,
그여잔 매번 사랑에 목숨을 걸었다.
처음엔 자신의 시간을 온통 그에게 내주고 그 다음엔 웃음을,
미래엔 모든 걸 다 내어주었다.
나는 무모하다 생각했다.
그녀가 그렇게 모든 걸 내어주고 어찌 버틸까, 염려스러웠다.

그런데 그렇게 저를 다 주고도 그녀는 쓰러지지 않고,
오늘도 해맑게 웃으며 사랑을 한다...
나보다 더 충만하게, 그리고 내게 하는 말...
나를 버리니, 그가 오더라...

그녀는 자신을 버리고 사랑을 얻었는데.
나는 나를 지키느라 나이만 먹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모두 유죄다...
자신에게 사랑받을 대상 하나를 유기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노희경 - 사랑에 관한 글 중에서

2006/04/19 00:18 2006/04/19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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