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소원 - 신사가 섹스를 끝냈을 때

Author : Rin / Date : 2006/04/20 08:08 / Category : 수다거리/script

남자들은 자랑한다.
자신의 넘치는 정력과 현란한 테크닉을.
하지만 그건 오해.


여자들은 오히려 섹스 후의 예우를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샤워하러 가는 거야?”
“잠깐만 기다려.”
내 오피스텔에서 두번째 섹스를 끝내고 그렇게 서운하게 욕실로 들어가버린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스팀 타월을 만들어 나왔다.

그리고 나는 곧 그것이 내 몸에 묻은 그의 정액과 타액을 닦기 위한 것임을 알았다.
그는 자상하고 부드럽게 내 온몸을 빼놓지 않고 닦아주었고,
내 이마에 계속 입을 맞추면서 나를 재워주었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로버트 레드포드가 머리를 감겨주는 메릴 스트립이라도 된 것 같은 행복감과 함께,
백사장을 애무하는 달밤의 밀물처럼 마음 속으로 밀려오는 그의 신실(信實)함은
나로 하여금 어떤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내가 그를 행복하게 해주었구나 하는 뿌듯함과
이 사람과는 앞으로도 계속 좋은 섹스를 할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까지.

방금 전까지 우리는 이성을 벗어던진 채 사랑을 나누었기에
이 순진무구한 어린 소녀로의 모드 전환은 더욱 감미로웠다.

여자는 섹스에 대해 이중적인 심리를 가지고 있다.
섹스할 때는 에너자이저처럼 멈출 줄 모르는 남자를 원하지만
끝난 다음에는 자상한 키다리 아저씨의 보살핌을 기다린다.

그의 순수한 행동은 결혼을 약속하지 않은 남자와 섹스를 했다는
까닭 모를 죄책감에 얼마나 훌륭한 면죄부가 되었던가.

이것이 내가 섹스 후에 받은 최고의 예우였다.
남자들은 모른다. 섹스가 끝나고 나서 여자의 심리가 어떤지.

그래서 그랬을 것이다, 지금껏 내가 만난 남자들이.
사정하자마자 내 위에 엎드려 헉헉대다가는
낼름 티슈를 뽑아 자신의 성기부터 닦기 시작하는 결벽증에서부터
후다닥 옷입고 나가버리는 번짓수 착각한 건망증,
콘돔은 싫어하는 주제에 “너 생리가 언제였니?”라며
뒤늦게 피임을 걱정하는 소심증까지.

여기에 “어때, 좋았어?”라고 묻는‘비굴한 배려남’까지 포함시킨다면
거의 모든 남자가 섹스 후에 예우는 커녕, 얼마나 크게 실례하고 있는지 모른다.

섹스가 끝나고 나면 여자는 불안해진다.

‘날 가졌으니 이제 싫어지겠지?’
‘날 그렇고 그런 여자라고 생각하면 어쩌지?’

머릿속은 이렇게 복잡한데 정작 남자가 ‘케어’는 커녕,
등 돌리고 코를 골거나 샤워하러 일어서 버리면
여자는 ‘내가 괜히 줬구나’하며 가슴을 치지 않을 수 없다.
주섬주섬 바지를 입으며 황급히 뛰쳐 나가는 남자에게는 속으로 외친다.

‘이럴 거면 돈이나 주고 가!’

이렇게 여자를 창녀라도 된 것처럼 불결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경우는 최악이다.
기껏 배려한답시고 “어때, 좋았어?”라고 묻지만 그건 예우이긴 커녕,
여자를 시험에 들게 만드는 일이다.

그 질문은‘널 위해 이렇게 노력했어’라고 생색을 내거나,
서비스를 다 끝내고 나서 ‘어때, 이젠 됐지?’하는 뉘앙스로 들리기 십상이다.
또 별로라고 하면 그가 실망할 것 같고,
좋다고 하면 너무 밝히는 듯한 인상을 줄 것 같아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그러니 남자가 알아서 헤아려야 하는 거다.

좋다. 남자들이 원래 그렇다고 치자.
그렇지만 한번 모질게 말해보자.
“제대로 해주고 물어보면 귀엽기나 하지, 만족시켜주지도 못했다면,
뒷처리라도 잘 해주어야 하는 거 아닐까?”

마음에도 없는 팔 베개나 사랑한다는 속삭임,
어디서 본 건 있어서 하겐다즈를 나눠 먹거나 어색함을 감추기 위한 시덥잖은 농담….
소녀가 아니라면 그것이 진심인지, 아닌지 느낄 수 있다.

“네 걱정 알아, 널 떠나지 않을테니 걱정하지마.
네 덕분에 많이 즐거웠구, 너 또한 그랬기를 바래.”

이렇게 믿음직스럽게 애기해주지 못하겠걸랑,
한 침대 안에 있으면서 다른 혹성에서 온 인간이라고 느껴지는 막막함은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섹스가 끝난 후에 그 남자의 젠틀맨십을 본다.
자신만 생각하지 말고 그녀를 먼저 생각하라.
그것이 그녀, 그리고 궁극적으로 당신을 위한 최고의 예우다.

이것저것 다 귀찮고 자신 없는 남자들은
아예 무릎 꿇고 “잘 먹었습니다!”라고 매너 만점의 인사를 던져보도록.


글/지소원(인테리어 디자이너) GQ 7월 기사 中
2006/04/20 08:08 2006/04/20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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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만화쟁이의 소소한 수다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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