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림길에서

Author : Rin / Date : 2006/04/24 00:08 / Category : 수다거리/talk

집으로
말아톤
웰컴 투 동막골
왕의 남자

투자자나 제작자 입장에서만 본다면 집으로는 할망구와 꼬마가 나오는 시골 촌구석 얘기에 말아톤은 한 술 더 떠서 장애자가 마라톤 뛰겠다고 깝쳐대며 심지어 웰컴 투 동막골에서는 버젓이 빨갱이까지 등장하고 동성애적 코드가 숨어있는 왕의 남자는 피해야할 시나리오 1순위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우리는 이 영화를 보면서 웃고 울고 가슴 찡해지는 감동을 느끼며 박수를 보냈었다.

이렇게 흥행의 공식에서 벗어난 영화들이 관객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은 스크린쿼터라는 버팀막이 있었기 때문이다.

혹자는 스크린 쿼터제에 안주하지 말고 더욱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일리있는 말이다.

하지만 투자자나 배급사들이 과연 경쟁력을 위해 흥행이 불확실한 영화들에 굳이 투자하려고 할까?
유명 스타들이 나오고 외국에서 흥행했던 영화를 사오기만 하면 되는 쉬운 길을 놔두고서?

경쟁력과 작품성 운운하면서 A에게만 땅을 주고 농사짓도록 하면서 B에게는 그 땅에 씨앗 한 톨 심을 기회조차 주지 않는 현실, 어디서 니주구리 십빠빠 같은 일본 만화는 내면서도 한국 신인들에게 철저히 인색한 출판사의 모습을 보며 영화판이 그 전철을 밟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내 주위의 빛나는 가능성을 보이던 수많은 만화쟁이들이 단 한번의 기회도 허락받지 못해서 떠났고 떠나고 있다.

그래도, 60만부판매를 기록하고 영화로 이어지는 만화들을 접하게 되면 그나마 아직은 만화에 대한 가능성이 발톱의 때만큼일지라도 남아있음을 느낀다. 하지만 한 문화 장르의 다양성과 깊이라는 것은 몇몇의 빛나는 작가들만 가지고 이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벌거벗은 민둥산에 쭉 뻗은 나무 한 그루에서 무슨 깊이가 나오고 무슨 향이 느껴지겠는가. 크든 작든 튼실하든 부실하든 열매를 맺든 못 맺든 수 많은 나무들이 함께 자라고 그 틈새로 잡풀에, 이끼낀 바위, 자라다 만 덩굴이며 이름 모를 꽃들까지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숲을 이룰 때 그  깊이와 향속에서 우리는 일상의 긴장을 풀고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것이다.

문화는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힘이다. 한국 영화는 이제 막 영화의 숲을 이루려고 하고 있다. 지킬 수 있을 때 지키지 않는다면 우리는 문화 소비국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

영화인들이 마냥 부럽다. 지킬 수 있을 때 지켜라.

20060222
2006/04/24 00:08 2006/04/24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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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n

게으른 만화쟁이의 소소한 수다거리들 corsag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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